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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명학수

출생:1966년, 대한민국 경기도 동두천

최근작
2023년 12월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

명학수

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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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저자의 말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 - 2023년 12월  더보기

해경(海卿)이 눈을 떴다. 그를 깨운 건 어쩌면 어떤 향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것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며 생김새를 관찰하고 향을 음미하던 해경은 그것이 한자로 레몬 영(檸)과 레몬 몽(檬)을 사용하는 영몽의 껍질임을 깨닫는다. 입맛을 다시며 영몽의 물기 없는 노란 껍질만 바라보던 해경은 금홍(錦紅)이 그것의 과육을 모두 먹어치우고 껍질만 남긴 것이라 단정한다. 해경은 영몽을 찾아 거리로 나선다. 하지만 1930년대의 경성에서 영몽은 귀한 과일이었다.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백화점과 과일가게와 시장, 심지어 식당과 주점과 찻집까지, 과일이 있을 만한 곳은 모두 찾아가 물었지만 영몽은 어디에도 없었다. 해경은 온종일 거리를 헤매다 실의에 잠겨 친구의 화실에 들른다. 그곳에서 해경은 마침내 친구의 정물화 속에 그려진 영몽과 조우한다. 허탈한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던 해경은 탄식한다. 저건 영몽(檸檬)이 아니라 영몽(靈夢)이로구나. 해경은 우리에게 이상(李箱)이라고 알려진 작가의 본명이며 실존 인물이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다. 이상이 정말 영몽을 찾아 경성의 거리를 헤맸는지, 심지어 당시 경성에 영몽이라는 과일이 있기는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니까, 저건 거짓말이다. 내가 오직 상상에 의존해서 지어낸 어설픈 픽션이며, 대략 십년 전, 종일 소설만 생각하며 습작에 몰두하던 시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머릿속에 던져진 작은 씨앗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이야기는 여전히 씨앗이다. 지금까지 대략 십년이 흘렀으니 저 씨앗이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으려면 앞으로 십년, 아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지난 십년 동안 다행히 나는 저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저것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저것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저것이 있어서 든든하고 마음이 놓인다. 저것을 만지작거리며 꿈을 꾸는 시간이 나는 좋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나의 여생이 되기를 바란다. 저것이 레몬 나무가 되지 않아도 좋다. 이대로 영원히 씨앗으로 남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어느새 나는 깨닫는다. 어쩌면 저 씨앗이 나의 영몽(靈夢)일지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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