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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인문/사회과학

이름:김형철

최근작
2018년 8월 <최고의 선택>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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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 고객의 언어 - 고객의 진짜 메시지는 무엇인가? 
  • 이진국 (지은이) | 북카라반 | 2020년 5월
  • 14,000원 → 12,600 (10%할인), 마일리지 700원 (5% 적립)
  • (8) | 세일즈포인트 :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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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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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업을 이끌고 있는 CEO들에게 기업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 게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하다. 고객의 언어를 듣고 공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최고의 선택이다.
2.
사고력과 논리력은 지성인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능력은 어려서부터 훈련 받아야 하지요. 이 책 <어린이 로스쿨>의 모의재판 구성은 토론을 통해 자신의 시각을 말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노력한 사람만이 논리적인 사고력이 생길 것이라 확신합니다.
3.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공자는 스스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이상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가르침이 수많은 정치적 탄압과 곡해 속에서도 2천 년이 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인생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의 진실성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진짜 공자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왜 그가 인류의 영원한 스승인지를 보여준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이 책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는 북극성처럼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영원한 인류의 스승이다.
4.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철학과 심리학, 양날의 눈으로 인생에 대해 통찰한 책 최근 열풍이 일고 있는 자기 계발서들을 읽어 보라! 반전이 있는 스토리들에서 우리는 감동과 교훈을 얻는다. 문제는 특정한 결론을 밀어붙이기 위해 짜 맞춘 듯한 예화들과 사례들에는 과학적 엄밀성도 철학적 성찰도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은 시작부터 다르다. 우리 입맛에 맞는 말만 하고 있지 않다. 그저 듣기 좋은 얘기만 하고 있지 않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시하는 책으로 일독一讀이 아니라 다독多讀을 권한다. 그래야 이 책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자기계발서를 넘어서는 삶의 지혜와 전략을 담고 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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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철학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욕구를 가진 존재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절대 넘어설 수 없다. 어디가 인간의 한계인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한계를 넘어서보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잔에 물을 가득 부을 수 있을까? 잔에 물이 넘치기 전에는 어디까지가 가득 찬 것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자신이 그 답을 알지도 못하는 질문을 늘 던진다. 구도자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한계를 결정하는 질문들은 많다. 이 책에서 한 프랑스 원로 철학자가 그 중에서 4개를 뽑아낸다.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이 바로 그것이다. 철학자들이 가진 어려움은 바로 이 한계를 넘나드는 사유 과정을 철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곳에도 없는 것이다. 공기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신이 산다는 천국은 어떤 곳일까? 아마도 사랑이 있고, 정의가 실현되고, 자비로움이 있는 곳일 것이다. 먹는 것과 관련하여 천국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욕망의 만족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이다. 세계가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믿는 것은 신을 믿는 것과 배치되는가? 저자는 이것이 질문으로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어린 학생들에게 말하고 있다. 이것 또한 철학자들의 임무다. 무엇이 유의미한 질문이고, 무엇이 무의미한 질문인지를 말해주는 것 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현실에 존재하는 실정법이 곧 정의로운 것이, 이상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누구나 알고 있다. 자신의 몫을 각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의롭다는 주장에 플라톤은 제동을 건다. 미친 사람이 자신의 칼을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주어야 할까? 아니다. 정의는 이래서 복잡한 복합 개념이다. 사랑과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로 쉽게 정의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한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오늘도 인간들이 죽는 날까지 물어 볼 수밖에 없는 질문을 대신 끊임없이 던진다.
7.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철학은 무엇을 하는 학문일까? 다른 어떤 학문 분야보다도 철학이라는 학문은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하여 물음이 가능한 학문이다. 도대체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철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는가? 철학은 우주에 대한 경이에서 출발한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철학이 필요 없다. 그러나 우리 삶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만이 삶의 의미를 성찰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고, 그 삶만이 살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오늘날 과학의 발전이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철학은 그 존재가치를 이미 상실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과학은 우리에게 how를 말해 주지만, 철학은 우리에게 why를 말해 준다. 뇌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우리의 생각은 뇌에 기반을 둔 활동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정신은 몸과 완전히 분리된 유령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두뇌 활동이 바로 우리의 생각이 뛰어 노는 장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두뇌 속에서 일어나고 정신활동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가? 저자는 단호하게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에 내가 지금 제주도에 여행을 가고 있는 상상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뇌파 측정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내가 즐거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이다. 내가 상상하고 있는 생각의 내용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정신과 육체는 같은 것이 아니다. 철학자는 이런 것을 지적하는 사람이다. 철학자들이 던지는 위대한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내 몸과 마음의 관계는 무엇인가?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기계도 사유할 수 있는가? 왜 선하게 살아야 하는가? 왜 아무 것도 없지 않고 뭔가가 있는가? 이런 정답이 없는 위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 사유하다 보면 어느덧 우리의 사고가 훌쩍 성숙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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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경제학을 더하면 철학이 나온다. 정말로 발칙한 생각이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융합 사고의 극치를 달리는 것이 아닐까? 서로 관련 없는 것들이 제대로 연결되는 곳에서 창의적 사고가 나온다. 그러나 그만큼 오류의 위험도 커지게 마련이다. 수학과 경제학에서 두 개의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철학적 질문에 대하여 어떤 답을 내놓을까? 이것은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다. 경제학자는 결과론적 사고에 익숙하다. 아니 결과에 따라서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실제 결과이든 예상 결과이든지 간에 말이다. 동기와 의도가 중요한 도덕적 평가기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결정적 실천의 순간에는 결과주의적 사고를 하게 마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러분은 10억분의 1 확률로 죽을 가능성을 예방하기 위해서 1달러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두통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두통약을 사먹으려고 1달러를 과감하게 지불한다. 그렇다면 사람 한 명 죽여서 10억 명을 살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물론 1명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참 재미있는 주장이다. 물론 여기서 한 명 죽이는 것과 10억 명 살리는 것 사이에 확실한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정교한 톱니바퀴로 구성된 복잡한 시계가 진화에 의해서 저절로 생성됐다고 믿는 사람이 도대체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시계를 볼 때마다 그 설계자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정교함과 복잡함에 감탄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지적 설계론이다. 리차드 도킨스는 이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두꺼운 책 한 권을 썼다. 저자는 도킨스가 오버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지적 설계론은 그렇게 두꺼운 책 한 권보다 훨씬 간단하게 부정될 수 있다. 수학체계는 시계 하나보다 훨씬 더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을 설계한 존재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저자의 증명 끝이다. 수학은 저절로 존재하는 걸까? 혹시 그것도 설계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누가 진지하게 그렇게 물으면 정신 나간 사람일까? 철학자들이 수학과 경제학의 근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연구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수학자 겸 경제학자가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연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면서도 환영할 일이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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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것은 역설인가? 아니면 당연한 말인가? 붕어 모양처럼 생겼지만 실제 붕어를 넣어서 만든 빵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기 때문에 전혀 모순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에 ‘진주조개’ 속에 진주가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계속 진주조개라고 불러도 되는가? 이 질문은 심각하다. 진주 없는 진주조개는 자기모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의 자아는 진주조개 속의 진주처럼 진주조개를 진주조개로 만들어 주는 핵심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나’는 실체로서 존재하는가? 이 해묵은 철학적 질문은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는 형이상학적 근본성을 갖고 있다. “오빠 나 남고 나왔어!” 이제 막 한 남성으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은 한 여성 트랜스젠더의 절규다. 학생들에게 ‘이 말을 하는 시점이 적절한지’를 물어보면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는 분명 트랜스젠더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다르게’ 대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육체로부터 자유롭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육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여성 호르몬을 투입하면서까지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가? 그 반대도 물론 마찬가지다. 일정 기간 다른 성의 호르몬을 서서히 투입할 때 자신의 육체에 생기는 변화를 환영할 수도 혐오할 수도 있는데, 그에 따라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결정하면 되는 것일까? 한 여성이 얼굴에 황산테러를 당한다. 변심한 전 남자친구의 사주를 받은 청부 테러다. 얼굴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다.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면 “저게 누구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주변의 가족들은 자신을 변함없이 대해주려고 끊임없이 눈물겹게 노력한다. 그럼에도 그 얼굴 없는 여성은 “나는 결코 옛날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자아의 정체성은 정신에서 찾을 수 있는가? 영국 경험론 철학자처럼 기억이 정체성의 전부인가? 흄처럼 “영속하는 자아는 감정의 다발”에 불과한 환상인가? 과거의 내 행동에 대해 내가 책임져야 하는가?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신경과학, 사회학, 종교학, 심리학 등에서 철학적으로 탐구해 들어간다. 융합의 지평을 철학자가 열어간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자아의식 탐구서다.
10.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같이 보낼 수 있다면 우리 회사 테크놀로지를 다 줄 수 있다”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듣고, ‘애플 기술이 별거 아니구먼’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지혜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말이다. 만약 토요일 오후에 존 스튜어트 밀이 말한 고급쾌락을 즐기고자 한다면, 철학자들의 지혜가 이야기 형태로 쓰인 책을 읽도록 추천한다. 더군다나 한 권의 책에 농축된 형태로 여러 철학자들의 지혜를 쉽게 전달한 책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철학은 비판적 사고를 하는 고뇌에 찬 창조적 작업이다. 다른 사람이 권위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찰해보는 치열한 사유과정을 거쳐야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한 마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다. 어제 한 일을 생각 없이 반복하고, 전임자가 한 일을 개념 없이 따라하는 그런 삶은 이제 버리고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결심해야 한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지혜로울 수 있다”는 소크라테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 참된 행복은 한두 번의 쾌락을 넘어서는 것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 따라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회의주의자 퓌론, “자신의 생각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이다”라는 스토아 학파, “이 세상 모든 것은 의심할 수 있지만, 내가 회의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회의할 수 없다”는 데카르트를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철학자들의 삶은 어떤 삶일까?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하고 있는 말을 실천한 사람들일까? 왜 그런 말들을 했을까? 짧은 책에서 난해한 철학적 이론들을 이야기 형태로 삶에 대한 간략한 기술과 더불어 명확하게 설명한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는 ‘무지의 베일’ 뒤에서 내리는 의사결정만이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존 롤즈의 사고실험은 철학이 얼마나 객관성을 추구하는 학문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철학자와 철학하는 고급쾌락을 맘껏 즐겨라!
11.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5월 2일 출고
    (중구 서소문로 89-31)
우리는 실수를 할 때마다 이렇게 자학하지는 않는가! “이제 나이가 좀 든 것 같아. 내가 분명히 본 것인데도 기억을 못하다니 말이야.” “그것도 못 알아보다니 아이큐가 좀 떨어지는 거 아냐?” 인간이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과학적 실험 연구결과가 이렇게 심하게 자책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이 될 것 같다. 자신의 시각적 경험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인간은 실수하는 동물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편이 오히려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 대학 캠퍼스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캠퍼스 내 길을 물었다. 묻고 있는 도중 큰 문짝을 든 두 사람이 그 사이를 지나가게 했다. 그 문짝이 지나간 후, 원래 질문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 그랬더니 15명 중 7명만이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처음 이 이야기를 읽고 샘플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 그 100배인 1500명을 실험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봤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그 문짝이 지나가는 시간은 불과 1초였다. 아니, 불과 1초 전에 이야기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도대체 이해가 가는가? 이것은 ‘주의맹’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약점이다. 인간의 시각이 정확하게 지각할 수 있는 것은 불과 2도의 각도 내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어서 엄지손가락을 붙여서 위로 치켜세우면 그 틈이 2도다. 이 정도 내에 있는 것만 정확하게 보이고, 나머지는 그저 그런 정도만 기억한단다. 이러니 인간은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의 출발점이다. 모든 것에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무리다. 잘하고 있는 것을 더욱 잘하도록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바로 지혜다. 눈으로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맹신이다. 자신의 주장을 항상 겸허하게 펼치는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
12.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착각은 자유다”라고 한 사람이 외친다. 누구든지 착각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좋은 세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이 “자유는 착각이다”라고 한다. 자유주의자의 주장에 독재자가 답한 내용이다. 물론 누구든지 첫 번째 세상에서 살고 싶다. 심지어 착각까지도 자유로운 곳이니깐. 한 남학생이 강의가 끝나고 난 후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그 여학생 알지. 왜 예쁜 애 말이야.” 사실 모든 남학생들이 은근히 그 여학생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 모를 리가 없다. “그래, 그 여학생이 어쨌다는 거야?” “걔가 아무래도 날 좋아하는 것 같아. 수업 중에 정확하게 날 13번 쳐다봤으니까.” 도대체 이 남학생은 왜 이런 착각을 하게 되는 걸까? 그 여학생이 자신을 13번 쳐다봤다는 것을 정확하게 세기 위해 그 남학생은 도대체 수업시간 동안 얼마나 그 여학생을 쳐다보고 있었을까?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학생이 좋아서 봤을지, 겁먹어서 봤을지, 착각은 역시 자유다. 실험실에서 쥐가 어떤 행동을 하면 먹을 것을 준다. 그 행동을 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먹이를 준다. 그러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 쥐는 결국 먹이가 나오는 그 행동만을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쥐가 하는 행동과 관계없이 먹이를 줘보자. 그러면 쥐는 무작위로 먹이가 주어질 때 행동에 관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할까? 어떤 행동을 보일까? 쥐는 처음 행동했을 때 먹이가 주어졌던 바로 그 행동을 반복한다. 처음 행동과 먹이가 연관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부적과 점을 믿는 것은 같은 이유로 착각이다.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일들이 수없이 많은 데 거기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착각은 자유다. 장자가 점심 먹고 자다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다가 잠이 깼다. 자 이제 장자가 묻는다. “좀 전에 장자인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는가? 아니면 지금 나비인 내가 장자가 된 꿈을 꾸고 있는 중인가?” 이 정도면 착각 중에는 좀 큰 착각이다. 아니 무엇이 착각인지 자체가 착각 중이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책을 통해 ‘혹시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봄으로써 독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주장에 열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13.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두 딸을 데리고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 아빠가 있다. 갑자기 옆에 있는 남자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자 그들은 남자를 부축해서 자리에 세운다. 100여 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그 아빠와 두 딸뿐이다. 열차 도착 신호음이 울리고 헤드라이트 불빛이 열차의 도착을 알린다. 바로 그 순간 그 간질환자가 다시 비틀거리다 결국 철로에 추락한다. 자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두 딸의 아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철로로 뛰어들었고 그 두 사람 위를 기차가 덮친다. 얼마 후 두 사람은 기적적으로 경미한 부상만 입은 채 살아난다. 두 딸아이의 아버지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 아빠의 행동은 분명 이타주의적이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를 생각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이 바로 자신의 목숨을 던질 각오를 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물론 그 장소에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한 다른 이기주의자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담보로 남을 구하는 진정한 이타주의자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과학은, 그 중에서도 특히 경제학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면 이타적 유전자를 가진 존재는 어떠한가? 집단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자는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데 실패한다. 이 역설을 어떻게 푸느냐는 진화생물학의 오랜 숙제이다. 희생하고 협동할 줄 아는 능력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 자리에 올랐다. 협업할 수 있어야만 커다란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 거대한 사회를 구성해서 개인의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상호신뢰가 필요하다. 신뢰는 손해를 각오하는 리스크를 안아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자신의 것만을 챙기는 근시안적 이기주의자는 결국 설 땅을 잃을 것이다. 손해보고 살 줄 아는 사람, 이보 전진을 위해서 일보 후퇴할 줄 아는 사람, 타인의 실수에 관대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 이 책의 전언이다.
14.
  • 명랑철학 - 니체를 읽는 아홉 가지 키워드  choice
  • 이수영 (지은이) | 동녘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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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 세일즈포인트 : 427
“신은 죽었다” 도대체 꼭 이런 식으로 말을 해야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정신을 차리는가? 사실 이렇게 자극적인 표현을 해서라도 지혜를 깨우칠 수 있다면 그것은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다. 니체가 보기에 인간들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는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성자의 입을 빌어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생각해보라. 헛된 가짜 문제에 매달려서 삶의 진실된 문제를 놓치고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한심한 낭비인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신에게 모든 것을 돌리는 방식은 니체가 보기에 지적 능력의 마비현상이다.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유를 멈춘 다음에 그저 절대자를 상정한 다음에 거기 다 몽땅 미루어 버리는 지적 태만의 극치인 것이다. ‘신은 존재하는가?’ ‘죽음 뒤의 세상은 존재하는가?’ ‘절대자는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가짜 질문이다. 가짜 질문으로부터 탈피하기 전에는 진정한 지혜를 구할 수가 없다. 진정 중요한 문제를 구별해내는 것이 바로 지혜의 샘물이다. 니체가 보는 진정한 문제는 자기보전과 관련된 사소한 생활의 문제들이다. 자기보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명제 앞에서 우리는 모두 숙연해져야 한다. 위버멘쉬는 절대자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재의 인간보다는 우월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존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걸맞게 행동하고 사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원숭이를 보라. 아니 원숭이를 쳐다보는 인간의 시각을 보라. 그것이 바로 위버멘쉬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동일하다. 니체는 마치 이 세상을 거꾸로 보기로 한 사람 같다. 그러나, 사실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을 거꾸로 보아 왔다는 것을 니체의 고발을 통해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니체의 사상을 그 누구보다도 쉽고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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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죄수에게 가해지는 형벌 중에 가장 잔혹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삶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간수가 죄수에게 벽돌을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라고 명령한다. 죄수가 그 벽돌을 옮겨 놓기가 무섭게 다시 원래 위치로 돌려놓으라고 한다. 그러고는 또 다른 쪽으로 옮기라고 한다. 옮기는 도중에 어떤 의미부여도 못하도록 조치한다. 예를 들어 속력을 점점 낸다든지, 벽돌을 예쁘게 쌓는다든지 등과 같은 의미부여를 막아버리면 그 죄수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삶을 영위해나갈 에너지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우리는 각자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아니 삶의 의미란 도대체 무엇인가?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우선 삶의 목적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목적론이다. 목적론으로 본다면, 하나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그 보다 더 큰 목적을 찾아야 한다. 또 그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더 큰 목적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무한퇴행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절대불변의 영원한 신을 상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이 이 우주를 창조한 목적과 인간 삶의 목적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목적론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를 지지한다. ‘인간은 그릇이 아니다’라는 공자의 말은 목적론에 비판하는 것이다. 특정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는 두 번째 방식은 삶에서 중요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을 결정하는 것은 판단을 필요로 한다, 바로 그 기준에 서있는 것이 합리적 감정, 정서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과 정서는 왜곡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을 처리해간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과도 다르다. 삶이 종말을 고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도 우리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못한다. ‘신이 없는 세상이 반드시 허무할 필요가 있는가?’ 이 질문의 포스를 느껴보는 경험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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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 - 가장 오래된 질문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대답들 
  • 니컬러스 펀 (지은이), 최훈 (옮긴이)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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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년 가까이 철학이 발전해 오면서 많은 학문들이 분리해서 독립된 분야로 나갔다. 정치학, 경제학, 법학, 자연과학,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심리학이 철학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이제 철학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정답이 없는 질문만이 남았다. 어쩌면 정답이 나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철학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제 철학이 여전히 던지는 질문들은 과학적으로 분석되거나 검증될 수 없는 것들인가? 철학자들은 과연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일까? 철학에 현재 남아 있는 분야는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인간과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네 가지 분야로 압축된다.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과연 어떤 질문들인가? 저자가 처음으로 던지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라는 형이상학적 질문은 다시 자아의 문제, 자유의지와 운명의 관계, 마음과 기계는 같은 것인가? 몸과 영혼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라는 문제들로 나뉜다. 저자는 두 번째로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인식론적 질문을 던진다. 인식론은 인간이 진리를 터득하게 되는 방법론과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저자는 셋째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윤리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내 행위가 도덕적 행운에 의존하는가 아닌가”라는 질문, “나의 도덕적 관심의 정당한 한계는 어디인가?”, “삶과 죽음의 의미는?”이라는 문제들로 퍼져나간다. 저자는 이 해묵은 질문들, 이제 더 이상 물어봐야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 질문들을 다시 현대 최고의 철학자들에게 직접 인터뷰를 통해서 물어 본다. 그들은 과연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을까? 이 대단히 흥미로운 기획의 결과는 과연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만들어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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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의 풍토가 짙은 기업 문화에서 이직은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 팀 이적이 일상화된 스포츠업계에서조차 여전히 어색하다. 한편 청년기에 젊은 혈기로 운동권에 몸을 담았다가 온건한 직장인으로 변신하는 사례에서도 일부의 비난은 피해갈 수 없다. 이 책의 저자 엔터니 플루는 소크라테스의 분석철학적 전통을 이어 받아 “증거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가서” 과거 합리적 무신론의 선봉장 역할을 하다 유신론 진영으로 투항한 철학자다. 그냥 행동대원 정도가 아니라 핵심 브레인이요 대변자였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인생역정을 소개하면서, 과거 무신론을 주장하던 시절에나 지금에나 변함없는 것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단한 용기다. 처음으로 그가 ‘커밍아웃’을 선언한 것은 유신론자와 공개토론하는 자리에 무신론 대변인으로 참석했을 때였다.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은 이제 ‘신을 믿는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 자리가 어떤 상황으로 바뀌어 버렸는가는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유명한 파스칼의 도박사 이야기가 있다. “만약 신이 존재하는 데 내가 믿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한 지옥의 불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신을 믿는 데 존재한다면 나는 영원한 천국의 행복을 누릴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데 믿으면 그냥 꽝이다. 믿지 않는 데 존재하지 않으면 역시 꽝이다.” 결론은 일단 신을 믿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저자는 나이가 팔십에 들어서 막판에 내세에 대한 보험을 들기 위해 신을 믿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과거 지적 동지들에게 총부리를 겨냥하고 있는데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주요 타겟 중의 하나다. 저자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 계기가 세 가지라고 밝히고 있다. 첫째, 자연 법칙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둘째, 생명현상이 어떻게 무생물에서 생겨났을까? 셋째, 물리적인 것 전부를 의미하는 우주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그로 하여금 신을 믿게 만들었다고 하는 점은 정말로 흥미롭다. 종교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가져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음미하면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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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현실세계에 대한 놀라움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철학의 시작이다. 심리치료를 하는 심리학자들은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상담한다.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대화의 수준을 넘어서는 정신이상을 보이면 상담이 불가능해진다. 약물치료를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 대화도 가능하고 약물치료를 필요로 하지도 않지만 마음이 답답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모르겠다면 철학자를 찾아갈 필요가 있다. 철학 상담가는 ‘보편적 교양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젊어서 철학을 전공하려고 했던 이유는 “이 세상을 좀 더 알고 싶어서”였다.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말렸다. 세상을 알기는커녕 철학을 하면 점점 더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이 옳다. 철학만으로는 세상을 알 수 없어 현실에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철학을 모르고는 세상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통찰력과 합리적 철학분석이 마주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어리석은 영혼을 일깨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 상담가와 상담 의뢰인이 나누는 대화는 ‘의미와 무의미의 혼동, 정체성의 위기, 인생관 가치관의 문제, 의사소통 장애, 대인관계 문제, 만성적 불만, 지루함, 방향 상실 등 삶의 방식에 관한 문제, 자살 충동,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이 책에는 '선택, 불안, 죽음, 시간, 웃음, 사랑, 선, 악, 우정, 낯섦, 소통, 불만, 순간적 행복, 지속적 행복'이라는 삶의 중요한 문제가 등장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병이 되지만, 해결하고 나면 약이 된다.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은 그만큼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니체의 말과 같이 철학자들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이 과학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무조건 믿을 것을 요구하는 종교와도 또 다르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하여 문제를 문제로서 또렷이 알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준다. 일급 철학자에게 상담을 받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후련해질 것이다. 그는 삶의 근본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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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축구화를 신는다는 것부터 재미있는 발상이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철학 활동과 스포츠가 궁합이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노린 것은 연관될 수 없는 것을 나란히 붙여 놓는 비유가 최고의 비유라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알고 저지른 승부수일 것이다. 축구와 철학. 소크라테스가 축구화를 신었다? 뭔가 상업적 노림수가 있는 것 같지만, 내용이 알찬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도록 하자. 우선 축구는 놀이라고 정의한다.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철학이 유희라니? 조금 의아해진다. 유희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즐거움(아이러니는 상대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조롱으로써 작용한다.) 둘째, 거짓행동 그리고 셋째, 무사무욕(질문은 본질적으로 지식을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으며 미리 정해진 목표 없이 우리의 무지를 자각시키려는 목적을 지닌다.) 철학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바꿔 놓는다. 철학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읽어 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방식으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 근거 없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 철학이 아니다. 축구는 경기장, 환경, 서포터즈들, 해설자, 심판, 텔레비전 시청자 등으로 구성된 게임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축구 경기는 제18회 독일 월드컵 결승전으로 2006년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렸다. 69,000명의 관중, 10억의 시청자들이 지켜본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기가 분석 대상이다. 연장전까지 가서 패널티 킥으로 이탈리아가 결국 우승했다. 전반전 시작부터 승부차기까지 시간 순서대로 경기 묘사가 이루어진다. 그러고는 인식능력, 자유, 타인, 욕망, 노동, 의식과 주체, 언어, 예술, 진실, 시간, 정의와 법, 도덕과 의무, 종교, 권력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쏟아낸다. 도대체 축구와 철학 사이에서 이런 연관관계를 찾아낸 것이 신기하다 할 정도다. 철학적 글쓰기의 폭을 넓히는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책을 읽고 난 다음에 그 월드컵 시합을 보고 싶어질는지는 모르겠다. 원래 철학은 흥미 위주의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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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선생은 어떤 사람일까? 자신은 힘들이지 않으면서 학생들은 힘들여 공부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학생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퍼즐을 풀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퍼즐을 풀려면 생각해야 한다. 가장 좋은 퍼즐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제대로 풀려면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다. 저자는 바로 우리에게 아주 친근하게 다가오는 문제들이 과연 그러한 이유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묻는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철학적 질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지금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당장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면 모두 다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다. 도대체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오래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마침 일자리 제안이 하나 들어 왔다. 참 좋은 일자리다. 다른 일자리에 비해서 봉급이 좋아도 한참 좋다. 문제가 하나 있다. 그 자리는 바로 사형집행수이다. 사형집행 전후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받으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과 식구들이 몽땅 노숙자가 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평소 가치관에 따르면 사형제도는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가족의 호구지책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당신은 과연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당신의 친한 친구가 지붕에서 떨어지면 당신은 어떤 기분일까? 당연히 기분이 좋다. 물론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철저하게 하겠지만 말이다. 정장 파티복을 입고 길을 걸어가던 신사의 어깨에 새똥이 떨어진 것을 당신이 목격한다면 어떤 감정을 느끼겠는가? 그것보다 더 고소하고 신나는 일은 없다. 당신은 그 장면을 보는 순간 희열을 느끼면서 웃고 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당신보다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못생긴 애가 동창회에 최고급 정장에 최고급 자동차를 몰고 온 것을 보고 당신은 그날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소화가 영 되지 않았던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안 했다면 단언컨대 앞으로 인생을 좀 더 살면 곧 경험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일까? 왜 다이어트 중에 참지 못하고 야식을 먹는 것일까? 남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왜 노숙자를 보면 마음이 불편해질까? 세상이 점점 거짓말만 하고 있는 것 같다면? 내가 너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원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선택하겠는가? 이런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가? 철학자들은 조심해서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다. 질문만 던져 놓고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저자는 나름의 철학적 답을 제시한다.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엉뚱하게 들리는 답이긴 하지만, 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저자는 친절한 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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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과학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선 과학이 아니라면 우선 진리로 인정받을 수가 없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도 그 활동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한편 종교는 과학에 정면으로 맞설 만한 조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도대체 철학은 무슨 생각으로 과학이기를 거부하는가? 철학은 근본적으로 메타 학문이다. 학문이 학문됨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과학의 과학됨이 무엇인지, 종교가 종교로서 성립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본다. 플라톤은 “철학이 죽음을 연습하는 학문이다”라고 말한다. 몽테뉴는 “철학은 죽는 방법을 연습하는 학문이다”라고 한다. 플라톤은 다시 “죽음의 의미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하이데거에서 환생한다. “어차피 죽을 것인데 살아서 뭐하나?” “세상에 기준을 두지 말고 자기답게 살아라!” “인생은 유한하므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절망을 안기는가? 무한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과연 우리를 희망으로 인도하는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존재는 인간 이외에도 많다. 무한한 존재만이 존재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은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어차피 죽을 것인데 왜 빨리 죽으려고 하는가? 죽음의 필연성은 우리에게 생을 일찍 마감해야 할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 단순히 현재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통속적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전부가 아니다. 죽음이란 생이 유한함을 깨우쳐 주는 근원적 시간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희망이 느껴진다. “결혼을 꼭 해야 하나요?”라는 독신주의자에게 플라톤은 사랑의 필연성을 강의한다. 인간은 원래 머리가 둘이고, 팔다리가 넷인 존재였다. 그러나 등을 중심으로 반쪽으로 쪼개지고 나서 다른 반쪽을 영원히 찾아나서는 존재가 되었다. 결핍을 느끼고 있는 존재가 갖고 있는 욕망보다 더 강렬한 것이 이 세상에 있을까? 누가 뭐래도 끝까지 자신의 반쪽을 찾아 나서게 마련이다. 이것이 에로스다. 에로스는 결국 상대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필리아는 자신과 상대방을 동등하게 사랑하는 친구간의 사랑이다. 아가페는 상대방을 자신보다 더욱 사랑하는 가족 간의 사랑이다. 사랑의 구분을 통해서 우리는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저자는 고전철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반인에게 쉽게 철학적 사고의 전개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적 고전에 대한 확실한 이해에 기초하면서 쉽게 풀어나가는 필력이 힘있게 펼쳐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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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등산을 갔다. 여기저기 좋은 경치를 구경하면서 산 위로 올라갔다. 올라갈 때는 힘든 길이지만 정상을 정복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야호, 외치는 것은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소리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고 환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서 근처 나무 그늘 밑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깜빡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게 너무 좋았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사뿐사뿐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녔다. 그러다 잠이 깨고 말았다. 나무 둥치에 기대어서 침을 흘리고 있는 지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다. 조금 전에 장자인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인 내가 지금 장자가 되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이것이 헛갈린다. 문제는 장자는 왜 이런 황당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것일까? 왜 이다지도 철학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같이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일까? 물론 장자가 이 차이를 정말 몰라서 물어 보는 것은 아니다. 벌써 물어 본다는 것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묻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탐구하기 위해서 물어 보는 것이다. 양자 간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생생함이 다르다. 전자가 약간 뿌연 상태라면, 후자는 그야말로 총천연색이다. 시각의 차이만이 아니라 오감이 느끼는 정도가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차이가 나는 것은 장자인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장자인데 나비가 되는 꾸는 꿈을 꾸고 있는 중인지, 아니면 좀 전에 나비인 내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꾼 것인지”를 물어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결정적 차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자 스스로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이렇게 황당하게 들리는 호접몽 우화를 통해서 장자가 노리는 것은 객관과 주관의 차이가 무엇인지, 더 나아가 그 차이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관과 객관 사이의 절대적인 구분은 과연 가능한가? 저자는 장자의 꿈 이야기를 프로이트의 꿈 해석과도 연결시키면서 동서양을 넘나든다. 꿈은 현실에서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서 꾸는 것이다. 저자는 가난한 장자가 일반인들처럼 부자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나비가 되서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것을 자유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호접몽을 포함해서 18편의 장자 우화를 소개하면서 덧붙이는 해석은 우리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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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은 여행하는 것과 같다. 낯선 곳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는 것은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여행의 영어 단어가 고생을 의미하는 TROUBLE에 어원을 둔 TRAVEL일까! 낯선 곳에서 머물면서 그곳 사정에 익숙해지면 이제 그곳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남들이 다 좋다는 그 곳에서 전혀 감응이 일어나지 않아도 떠나야 한다. 낯선 타자와의 긴장이 지속되는 것이 삶의 활력소가 되듯이, 책을 읽는 것도 자신을 낯선 곳으로 던지고 배우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치열하게 독서한 48권으로부터 얻은 단상을 우리에게 평이한 말로 들려주고 있다. 객관적 독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예를 찾아가며 자신이 얻은 교훈을 전달해 주고 있다. 철학자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심오하기 때문에 짐짓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열정적으로 글을 써나가고 있는 저자의 독서폭은 상당히 넓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저자의 광범위한 관심사 또한 매력적이다. '후회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원회귀의 사상을 설파한다. 만약에 당신이 어떤 행위를 하려고 할 때, 그 행위가 십만 년 뒤에 다시 반복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더구나 후회할 만한 일이 십만 년마다 반복된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우리의 모든 삶이 그냥 일과성으로 지나가고 말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중압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의 삶이 영원히 회귀'하기 위해서 '영혼불멸의 삶이 논리적으로 또 형이상학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는 없다. 니체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가 없으면 책임도 없다.'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 행위자가 자유의지를 행사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복잡한 전철에서 하이힐에 밟힌 것에 대하여 전철 운전기사에게 잘못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지, 그 아가씨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면 자유의지로 나에게 해를 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와 결정론 사이의 이율배반(antinomy)에 대한 칸트의 복잡한 논증과정을 거침없이 저자는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읽고나면 철학에 대하여 더욱 심층적으로 공부할 필요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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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명의 의견과 다른 1명의 의견이 절대로 침묵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한 명의 의견이 만약 옳다면, 우리는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한 명의 의견이 틀리다면, 우리의 의견이 옳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 투표를 할 때에는 반드시 사전에 자유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유토론 끝에 투표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줄리언 바지니는 “민주주의는 그저 다수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사안별로 매번 다수결을 확인하여 그 여론 결과대로 한다고 해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소수의 의견이 진실을 대변한다고 지도자가 판단하면 그 정책을 실행한다고 해서 오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 지도자가 비인기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물론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는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에 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대의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이 다수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라고 바지니는 지적한다. 전년도에 최고 비행사가 된 조종사는 그 다음 해에 성적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았다. 거의 예외 없이 전년도의 성적에 못 미쳤다. 이스라엘 공군에서는 그 원인을 조사했다. 칭찬을 받게 되면 도덕적 해이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칭찬 받으면 고래도 춤춘다는데 왜 성적이 떨어지는 것일까? 의외의 결론은 인간세상사에는 '평균회귀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즉 최고로 잘하면 그보다 더 잘하는 것은 힘들다. 그보다 못할 확률이 훨씬 높다.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며칠을 고생하다가 감기약을 먹으면 낫는다. 감기약 때문인가? 아니면 이제 나을 때가 됐는가? 우울증 치료의 효과도 마찬가지다. 거의 나락에 떨어지고 나서야 전문가를 찾아 나선다. 전문가의 도움으로 낫는 것인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살충동을 이겨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냥 기분이 나아지는 것일까? 전문가의 효력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바지니는 말한다. 매일 아침 해가 뜰 때마다 모이를 먹었던 칠면조는 “나는 늘 해가 뜰 때마다 모이를 먹는다”는 보편법칙을 수립한다. 그러나 어느 날 목이 비틀려 죽고 만다. 버트런드 러셀의 귀납적 오류에 관한 이야기다. 오랫동안 일정한 현상을 반복 경험하면, 그것이 일반화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류라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오류로부터 해방될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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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여우가 포도를 따먹으려다 실패하자, “저건 신포도야” 하고 돌아선다. 자신의 능력 밖이라고 생각하자 자신이 추구한 목표를 폄하함으로써 위안을 삼는 태도다. 그러나 사실 여우는 하잘것없는 목표를 추구한 더 한심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위안하려던 것이 오히려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인정할 꼴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실천적 모순을 수도 없이 저지르면서 살아간다. 심지어 논리적 오류는 말할 것도 없다. 사고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 우리는 자신의 사고가 논리적 오류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슨 오류인지, 왜 그런 오류를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파스칼의 내기’에서 도박사는 신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인간이 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여우처럼 “신포도야”라고 말할지, 아니면 끝까지 포도를 딸 노력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신이 존재하는데 안 믿으면 당연히 지옥에 가고, 믿으면 천당 간다. 반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데 있다고 믿으면 살아생전에 약간 손해 보고, 안 믿으면 그냥 아무 것도 아니다. 이 계산을 해 보면, 신이 실제로 존재하든 아니든 믿는 것이 안전한 대책이라는 결론에 도착한다. 마치 사고가 나든 안나든 보험에 들어놓으면 여러 가지로 좋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러나 이 계산은 오류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이런 식으로 신을 믿는 것을 신앙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천당 갈 리가 만무하다. 둘째, 파스칼은 기독교의 신을 말하고 있지만, 이 도박사의 계산은 다른 종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의 의미가 그 의견이 잘 뒷받침되고 있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생각이 항상 근거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논증은 오류에 기초하고 있다. 내가 권리가 있다는 것이 그것이 제대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도 오류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의사들에게 이 약을 사용하면 4명 중 1명은 죽는다고 말하면 대부분 사용을 꺼린다. 그러나 이 약을 사용하면 4명 중 3명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 사용을 결심한다. 사실 두 명제가 동일한 현상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통계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다르게 반응한다. 좋게 표현하면 행동경제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인간은 오류에 취약한 것이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 악을 아는 것이 필요하듯이, 합리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오류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12가지 오류에 자신이 얼마나 취약한지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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