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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번역

이름:박찬순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6년,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주

최근작
2023년 6월 <검은 모나리자>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

첫 소설집을 낼 때는 두려움 가운데서도 작은 설렘이 있었다. 문학이라는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찰랑거리는 물에 첫발을 담그는 듯한 느낌. 아마도 무지해서였으리라. 두번째는 나도 몰래 깊은 바다에 풍덩 발을 내딛는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다. 자기 갱신의 흔적이 없는 글이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강박감에서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는 또다시 끼적이고 있었다. [……] 매년 가을이면 들려오는 세계 작가들의 시와 소설 낭독 소리를 ‘평원에 쏟아지는 단비 같은 축복’이라 부르던 아이오와의 농부와 독자 들. 그들 모두 남루한 생의 덤불속에 숨어있는 눈부신 조각을 찾아내고 그 너머 깊고 먼 어떤 곳에 도달할 수도 있는, 언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그들에게서 옮아온 그 그리움의 힘으로 쓸 수 있었다. 살며, 사랑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승리하는 내 이웃들의 이야기. 아니 실수하고 실패하고도 승리하는 삶의 전사들의 이야기를.

발해풍의 정원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밥을 위해 내 모든 시간이 생업에 바쳐지고 있을 때 문득문득 쓰고 싶다는 욕구가 턱에 찰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면서 그 욕구를 꾹꾹 눌러왔다. 어쩌다 운 좋게 늦깎이 등단은 했지만 쓴다는 일의 지엄함을 모르고 함부로 뛰어들었다는 생각에 괴로움이 크다. 준비도 안 된 채 왜 쓰느냐고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아무래도 그것은 내 생의 첫 기억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피난길의 끝에 보았던 녹색 세계에 대한 동경이다. 겨우 네 살 차이 오빠 등에 어설프게 업혀 떠난 피난길이 내 생의 첫 기억이었다. 어머니의 등은 병환 중이던 할머니에게 내어주었다. 아장거리며 길을 나서면 바로 몇 발짝 앞에 폭탄이 떨어져 나는 눈 위에 납작 엎드리는 법을 배웠다. 의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서울 생활은 다복했지만 내겐 전쟁 이전의 기억은 전혀 없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재도 전쟁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환자가 있었던 우리 가족은 수 백리 길을 걸어서 몇 달 뒤에야 고향에 닿았나 보다. 고향 마을 어귀로 들어섰을 때 그곳에서는 화약 냄새가 나지 않았다. 초록 보리밭과 나무와 풀숲으로 넉넉한 녹색의 세상이었다. 홀연 어린 마음에도 저절로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런 세상을 두고 왜 그런 험한 곳을 헤맸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도 끝나고 인간이 그토록 많은 것을 이루었다는 지금도 세상살이는 녹록지 않아 고통스럽고 위태로운 일들 투성이다. 내 곁에는 거센 물살을 힘겹게 가르는 작은 친구 물고기들이 있다. 그들은 물살을 따라 내려가다가 또는 거슬러 올라가다가 몸에 생채기가 나고 한쪽 지느러미가 잘려나갔다. 나를 안심시키던 그 푸른 세상이 다시 그립다. 나와 내 이웃 물고기들에게 그런 안도감은 좀체 찾아지지 않을 것만 같다. 우린 모두 서로에게 실오라기 한 올만큼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없음을 나는 안다. 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 삶의 조건에 무슨 조화를 부릴 마법은 없다. 다만 이 말만은 할 수 있을 듯하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늠연하게 견뎌내는 이들의 지느러미에는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는 눈부심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찾아내는 일만이 이 혼돈의 세상을 사는 보람이라고. 누군가 그 눈부심을 찾아낼 수 있다면 행운이리라. 그 누군가가 가끔은 나였으면 정말 좋겠다. 그리하여 나는 땀 냄새에 절은 일터를 사랑하고 싶다. 굵은 땀방울 흠씬 흘린 뒤에도 어이없게 찾아오는 고통에, 홀로 아파하는 이를 만나고 싶다. 그의 몸에서 눈부심의 징후를 맡고 싶다. 학창시절부터 내게 글쓰기를 부추긴 친구이자 글 스승인 소설가 윤후명 형과 문학의 찬연함을 느끼게 해준 김치수 선생님, 내 무딘 글에 첫번째로 격려의 눈길을 주신 최윤 선생님, 피난길에서부터 내 생에 변함없는 등짝이 되어준 오빠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낸다. 무엇보다 부족한 글을 책으로 엮어주신 문학과지성사에 깊이 감사드린다.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

소설이 반드시 작가의 경험의 궤적은 아닐지라도 한 권의 소설집에는 그 몇 년간의 삶이 은연중에 부록으로 딸려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메이킹 필름 같은. 나의 경우 그 안에는 무엇보다도 수많은 고민과 방황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하다. 햇수가 더해질수록 글쓰기는 더욱 두려워지고, 텅 빈 모니터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만 노려보던 순간들, 대상을 알 수 없는 그리움을 안고서 이국의 도시 밤거리를 헤매던 때. 키냐르의 말대로 진정 “방황은 나의 숙소”였다. 그 헤매는 발걸음 닿는 곳마다 아픔은 도처에 널려 있었고 나는 점점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어갔다. 그 참담함을 날카롭게 벼려내려던 욕심은 그러나 나의 무딘 언어 앞에 늘 무릎을 꿇곤 했다. 글은 좀체 써지지 않고 불면의 시간은 늘어만 갔다. 그런 시간이 길어져 가면 나는 영락없이 실연당한 짝사랑 애인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그렇게 시간이란 물결이 흘러가고 난 뒤 내 안에 남은 것들, 급류에도 휩쓸려가지 않고 남은 몇몇 자갈들이 모여 이 책이 되었다. 유럽의 완행열차에서 목격했던 스산한 난민들의 행렬. 레지던스 작가로 옛 페르시아의 향기 가득한 테헤란에서 피부로 느꼈던 뜨거운 시 창작 열기, 자신들의 운명을 시로써 극복하겠다는 듯한. 그리고 이 혼돈의 시대를 헤쳐가려 안간힘 쓰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몸부림. 결국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아주 소소하고 작은 것들, 덧없는 존재들이 생의 가장 막막한 순간에 뿜어내는 지순한 숨결이었다. 그 고단하고 선량한 숨결에서 어느 찰나 언뜻언뜻 비치던 알 수 없는 아름다움과 생명의 기미. 그것이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지.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어렴풋한 어떤 느낌뿐. 이 무지함과 가난한 나의 언어를 안고서 쉽게 오지 않을 그 순간들을 찾아 또다시 헤매리라는. 그것은 매몰차게 나를 버리고 떠난 짝사랑 애인의 뒷모습을 쫓는 것만큼이나 힘겨운 발걸음이 되리라는. 다만 바라건대 그 일이 내내 가슴 뛰는 여정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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