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국내저자 >

이름:복효근

성별:남성

출생:1962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남원

최근작
2024년 3월 <어느 대나무의 고백>

고요한 저녁이 왔다

시와 사진은 별개의 작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 따로 사진 따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슬 한 방울이 무연하게 꽃봉오리에 떨어졌습니다. 이슬이 앉은 꽃봉오리와 꽃봉오리를 만난 이슬은 그 이전의 이슬과 꽃봉오리일까요? 이슬 한 방울로 하여 꽃이 피어납니다. 꽃을 만나 이슬은 향기로운 보석이 됩니다. 거기에 햇살이 다가와 비로소 활짝 한 우주가 완성되는군요. 사진과 시, 이 우연한 조합에서 꽃과 이슬의 화학반응을 기대해봅니다. 기적을 완성하기에는 햇살과 같은 맑은 눈빛이 필요하겠지요. 그 눈빛 맑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군요. 덕분에 제 누추한 삶을 시로 추스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쩌다 열 번째 시집이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이 일에 더 야무지게 어리석어볼 요량입니다.

꽃 아닌 것 없다

크고 화려한 꽃만이 꽃이랴. 작은 풀꽃들도 제 나름의 빛깔과 향기가 있다. 때론 돌 틈에 핀 봄맞이꽃 하나가 봄을 불러오고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기 내 안에 피었다가 지는 사유의 작은 풀꽃들을 모아놓았다. 잡초가 적지 않을 것이다. 모두 1행에서부터 10행 이내의 조그만 시편들이다. 높고 크고 화려하고 힘센 것들 앞에 조브장해진 내 어깨를 닮았다. 혀짤배기소리에도 귀를 빌려주는 따뜻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2017년 범실에서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다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시를 모르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만약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시작했더라면 아마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럴진대 15년 전은 오죽했으랴. 네 번째 시집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을 펴낸 지 15년이 되었다. 잠깐 세상에 나왔다가 이내 기억에서 잊혀져 간 시집이다. 돌아보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못난 대로 그 시절 내 고뇌와 열정이 그대로 담겨 있음은 부정하지 못하겠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내 족적이다. 이번에 <달아실 시선>에서 다시 세상에 내보낸다고 한다. 못나고 부족한 시편들도 어여삐 보아주시는 따뜻한 마음들이 있어 내 시는 그나마 이렇게 목숨을 부지해왔다. 그분들께 그리고 달아실출판사와 박제영 시인께 감사한다.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꽃핌의 저 고요로운 파열음이 실상은 신의 중얼거림일진대 그것을 번역하여 명리에 허천난 넋에 번개의 언어 은장도 하나 찔러 넣어주지 못하고 흙탕물에 찌든 육신의 아랫도리에 연꽃다운 화두 하나 걸쳐주지 못한다면 골라 골라 골라아 골라 시장에서 외치는 소리와 다를 게 무에 있다드냐 더군다나 골라 골라 외치는 그 소리까지를 신에게 꽃 피어가는 그 파열음으로 통역하지 못한다면야 시는 개뿔이라 해야 옳다 아, 아직은 개뿔일 뿐인 나의 시여.

마늘촛불

숫눈 위를 고양이가 지나갔나보다. 그 자리에 얼음이 얼었다. 고스란히 꽃이다. 세상에, 발자국이 꽃이라니! 서늘하고 투명하다. 내 시와 삶은 무엇을 닮아있을 건가. 조심스레 여섯 번째 발자국을 내려놓는다.

목련꽃 브라자

어디 별뿐만이겠느냐. 바로 옆에 있는 꽃에게로 가기 위해서도 죽음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내가 어찌 나인 채로 꽃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꽃의 중심에 가 닿기 위해서는 죽어서 꽃이 되어야 하리라. 그래 일생에 죽음이 어찌 한번뿐이랴. 저 나무 한 그루에 다가가기 위해서도 일생이 걸린다. 나의 시는 다생(多生)의 내 죽음의 기록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시의 기차를 타고 너에게로 간다. 나에게로 간다. 별에게로 간다.

새에 대한 반성문

나는 시방 또 하나의 치욕을 견디려 한다. 삶, 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저주여.

어느 대나무의 고백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시집 사이에서 가려 뽑아 시선집을 낸 적이 있다. 지금도 다르지 않지만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다. 2006년이다. 그걸 새로이 찍기로 하였다. 몇 편을 더 보태고 몇 편은 고쳤다. 돌아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시랍시고 내가 이런 시를 썼나 싶으면 바짝 땀이 날 때도 없지 않다. 시도 삶도 부끄러움을 먹고 자란다. 부질없다 할지라도 나는 나를 넘어서기 위해 다시 한번 더 부끄럽기로 한다. 2024년 3월

예를 들어 무당거미

아무래도 시는 울면서 웃는 방식이다 지독한 빚쟁이처럼 꿈결에도 나타나곤 했다.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채 야멸차게 떨치고 돌아설 재간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는 몇 걸음에 도달할 거리를 돌아보니 30년, 300년을 걸어도 닿지 못할 것임을 알 즈음이다. 어느 누가 너처럼 한결같으랴. 어쩔 수 없다. 가는 데까지 가자. 2021년 가을 지리산 아래 범실에서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다

시의 촉수를 자극하는 장면을 만나면 사진에 담았다. 거기에 담긴 기억과 느낌을 소환하여 시를 썼다. 시와 사진의 혈맥이 섞여 한 몸이 되는 방식이다. 사소한 일상에서 시를 발견하며 세상엔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의미 있는 일이었으며 발견과 깨달음의 작은 기쁨들이 함께하였다. 2020년 연두빛에 싸여 범실에서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