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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정은경

최근작
2023년 1월 <영원의 기획>

디아스포라 문학

이 글들은 대개 학문적 저술이나 비평적 글쓰기보다는 독서 감상문이나 에세이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여 글을 써 나가는 동안에도 나는 능력의 한계와 학문적 정체성에 대해 더러 한숨을 쉬기도 했는데, 이 책을 묶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그러한 주저와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애초 생각과 달리 멀리 달아나기만 하는 디아스포라의 범주에 때론 위축감을 느끼기도 하고, 나의 비평적 정체성이 어느새 '디아스포라의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은 아닌지 슬며시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 한편으로는 한국문학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것들을 만나는 즐거움과 '바깥'에서 섭렵하는 문학의 '보편성'에 대한 성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밖으로부터의 고백

너무 멀리 왔다. 혼자 튜브를 타고 놀다가 어느새 바다 깊은 곳까지 흘러가 버린 여름 피서지에서처럼. ‘디아스포라(이산인)’를 키워드로 한, 두 번째 책을 낸다. 집을 나선 차에, 기왕이면 이국땅에 살고 있는 ‘한민족 동포’뿐 아니라 다양한 이방인들을 만나 보자고 했던 여행길이 여기까지 왔다. 첫 번째 책 <디아스포라 문학>에서도 나는 ‘디아스포라’와의 내밀한 만남에서 오는 고통과 필자의 한계에 대해 고백한 바 있는데, 그것은 이번 책에서도 변함이 없다. 그들과 좀 더 깊이 대화하고 그들을 잘 이해하려면, 그가 살아가는 곳과 떠나온 곳의 현재적 지형은 물론 역사와 언어에도 밝아야 한다. 외국어에도, 세계사에도 그다지 전문적이지 못한 내가 그들과 나눈 대화 수준은, 아마도 독자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뜻 외국문학을 읽고 에세이를 쓴 것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어떤 힘을 믿기 때문이다. 글과 말은 반드시 해박한 지식과 전문적인 식견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싶다는 어떤 욕망과 정념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타인을 향한 호기심과 에로스가 타인 곁에 머물게 하고, 찬찬히 보게 만들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그 ‘무지’와 ‘미경험’이 타자를 새롭게 발견하고 조명하며 열광케 하는 힘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나치게 많이 알고 반복해 온 자는, 말하고 싶지 않다. 이를 우리 은사님은 ‘노인의 특징은 대화가 없다’라는 말로 명쾌하게 정리해 주신 바 있다. 대상에 대한 ‘새로운 눈뜸’은 그런 거리와 낙차에서 발생한다. 나는 2002년 겨울 우연히 투고한 ‘평론’으로 당선되어 비평가 노릇을 해 왔는데, 비평가를 꿈꾸지 않았던 내가 당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 거리와 낙차 덕분이다. 당시 독일에서 몇 개월을 체류하고 귀국한 나는 한국 사회와 그 안에서의 내 삶을 새롭게 보게 되었고, 할 말이 많아졌던 것이다. 각도를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벤치에 누워 보아야 하늘과 나뭇가지가 보이고 의자에 올라서 봐야 책장 구석에 끼여 있는 편지가 보이듯, 각도를 바꾸면 새로워진다. 교실 뒤에 손들고 벌서면서 본 풍경이 여느 때와 달랐던 것처럼. 창밖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면, 내가 알던 집이 아니다. ‘나’의 원근법을 뒤집어, ‘너’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도 다르다. 내가 여행길에서 만난 이들은 그런 ‘타자’의 풍경을 보여 주었고, 그것은 언제나 경이로웠다. 그 길에서 나는 부유한 유대인이자 대문호였으나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절망을, 백인 여성을 욕망한 흑인 남성의 비극(타예브 살리흐)을, 아프가니스탄에 두고 온 아이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할레이드 호세이니의 죄의식을, 9.11 테러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된 파키스탄인 모신 하미드를,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에 맞선 진짜 파이터 무하마드 알리를, 조선족 금희를, 청춘을 외설이라고 말하는 곰브로비치를, 소망을 잔혹동화로 바꿔 버린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그리고 ‘노력하지 마라’고 충고하는 술주정뱅이 마초 아저씨 찰스 부카우스키를 만났다. 이 책은 고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들의 문학을 다루었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들도 있다. 식민과 분단을 경험한 대만인 우줘류나 오키나와 작가 메도루마 슌은 디아스포라를 낳은 제국주의 지형 속에 놓인다는 점에서 주목한 작가들이고, 더글라스 케네디나 코맥 맥카시의 경우는 그들의 재미난 이야기 때문에 읽었던 작가들이다. 독자들에게 ‘더 친절한 가이드’는 아닐지라도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나와 같은 경이를 체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집을 그리움의 장소이게 해 준 가족과 조국에 고마움을 전한다. 반달을 바라보며 2017년 5월

영원의 기획

문학의 시간은 실재하는 시간과 무관한 바깥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작용을 받지 않는 시간, 그 바깥의 시공간은 진짜의 세계가 아니라 ‘그림자’의 세계이기 때문에 현실보다 자유롭고 아늑한 한편 어떤 죄의식을 느끼게 합니다. 타인들과 공유할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내부에의 침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쓸쓸함이 고립이나 자폐와 같은 완전한 절대성으로의 도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쓰라림에 가까운 쓸쓸함은 나라는 고유성과 타자의 고유성이 만나 튿어진 자리에서 발생하는 정념입니다. 각자가 내재성을 더 많이 품고 있을수록 그 만남에서 ‘찢긴 상처’의 상흔은 깊습니다. 문학은 그 찢긴 상처들과 튿어진 마음들이 모여드는 자리입니다. 모여서 다시 또 상처를 후비는 싸움을 지속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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