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임동확

최근작
2023년 11월 <부분은 전체보다 크다>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천하는 천하에 감춘다(藏天下於天下)'는 생각으로 살아왔건만, 과연 나의 시는 저 한 그루 미루나무처럼 홀로 당당하고 충만한 경지를 이루었던가. 하나의 단어와 또 다른 단어들이 무한연쇄를 이루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참된 대긍정의 자유에 이르렀던가. 십 년 침묵을 마음속으로 서원했건만 칠 년 만에 내는 시집은, 그래서 더욱 부끄럽고 미흡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세월에도 의외의 소득이 있다면, 선악의 피안을 넘어선 그 자체로 완전한 세계와의 조우이다. 뒤늦게나마 내가 저 변화무쌍한 생성계의 참여자라는 사실의 발견이다. 내 안에 현전하는 그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참된 것이라면, 나의 시는 타성적이고 관습화된 분별심이 아닌 무한지평의 우주로 열려 있는 현재의 나를 되찾은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러기에 당분간 나에게 시는 그 어떠한 슬픔이나 부정이 없는, 생성과 하나인 자신을 체험하고 완성하는 양식이 될 것이다. 이제야말로 나는 시가 내 생의 구원이 될 것이라는 예감에 오늘 하루도 즐거이 진흙밭을 낙토(樂土)로 여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하기만 하다.

들키고 싶은 비밀

그것이 한 편의 시로 이루어졌든 한 편의 산문으로 이루어졌든 한 작가가 지은 문학의 집은 단지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 소유권은 그 집을 방문하는 독자들의 몫이다. 혼신을 다해 힘들여 지은 집이지만, 작가는 그런 독자와의 자발적인 공동소유에서 더 많은 기쁨과 성취감을 느낀다. 문학의 집은 작가와 독자가 함께 행복해지고 보다 풍요로워질 때 더욱 가치를 발한다.

매장시편

모든 나의 삶이 오류투성이일진대 어찌 시가 완벽하길 바랄 수 있으랴. 더욱이 시가 참된 인생의 폭과 깊이, 그리고 부단한 실천적 뒷받침에서 그 존재와 진실이 확보되는 것이라면 아직도 세상은 물론 자신마저 감당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출발이 스스로를 종로 네거리쯤 선 벌거숭이로 만든 짓임에 틀림없으리라. 그러나 "내가 나일 때 나는 너이다.(Ich bin du, wenn ich bin.)"란 명제를 실감할 수 있었던 지난 팔 년의 실존적 고뇌들을 이제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이 이런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게 한 것 같다. 또한 그날 이후 모두에게 형벌처럼 각인된 '살아 있음의 죄의식(u"berlebensschuldgefu:hl)'이 온통 나의 시와 삶도 지배해 온 것이나 아닌가 하는 때늦은 자각과 함께 결국은 그 모든 싸움과 행위가 살아 있는 모든 현재의 '나'의 문제였다는 나름대로의 판단 속에서 그동안 일기 대신 꾸준히 시로 메모한 것들의 일부를 정리하여 발표함을 밝혀 두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집은 개인으로 볼 때 하나의 성년식이나 통과의례쯤으로 한정하고 싶으며, 앞으로 좀 더 크고 넓은 빛의 거리에서 나와 너, 나와 이웃, 주인공과 세게가 분열 없이 해후할 수 있는 삶과 시를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탤 것을 다짐해 본다. 끝으로 착하고, 정직했기 때문에 죽어 간 사람들과 그날의 상처로 헤매이는 사람들, 그리고 낳아 주신 죄 탓으로 지금까지도 뒷전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니, 아버지께 먼저 큰 절을 올립니다. 1987년 11월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운 이유

우리가 매일 접하는 현상의 세계 또는 구체의 영역은 가변적이고 유동적이기에 제 본성과 무관한 시.공간이 아니라, 바로 '나'의 본질이 구현되는 장소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의 이분법에 가려 있는 시들의 풍요로움과 깊이를 읽어내고자 했다. 시대착오적인 실용주의 혹은 과학과 경제 만능주의 속에서 오늘의 시인들이야말로 모든 사물을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 파악하고 수용하는 생성세계의 담지자라는 관점에서 그들의 고뇌와 사유의 비밀을 엿보고자 했다.

시는 기도다

스무 해 만에 펴내는 나의 두 번째 산문집 『시는 기도다』는 분명 시와 산문 사이에서 어중간한 포즈를 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사유를 전개하고 담론을 이끌어가는 주요 논거와 사변이 자주 시와 시인들의 말로 의지함으로써 저도 모르게 현실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면서 매서운 비판을 가하는 산문 정신 대신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에 더 주목하는 일종의 시론(詩論)에 가까워진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다. 하지만 내게 시는 분명 어떤 ‘겉사실’의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속사실’의 대상이다. 특히 올바른 시가 단순히 현상의 사건이 아니라 가장 깊은 심연의 언어를 그 근본으로 하고 있다면, 표면적인 형태와 그 접근 방법이 다를 뿐 시 정신이야말로 산문 정신이 지향하는 사유 체계와 비판 정신의 정수다. 젊은 시절, 나에게 하나의 길잡이이자 일종의 경전이었던 김수영의 『퓨리턴의 초상』과 『시여, 침을 뱉어라』 등에 실려 있던 산문들과 시의 관계가 그 좋은 예다. 내심 나의 문학적 스승으로 삼아왔던 김수영의 말처럼 주로 개인적 자유에 관계하는 시 정신과 정치적 자유를 이행하는 산문 정신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밀고 나갈 때, 어느새 시와 산문은 서로의 차이와 대립을 끌어안으며 역동적인 통일을 이룬다. 얼핏 대립적으로 보이는 주관과 객관, 사유와 존재, 형식과 내용 사이의 끊임없는 운동과 ‘모험’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문득 그 차이를 넘어서게 하는 ‘기적’을 낳는다. 제2산문집 제목 『시는 기도다』는 무슨 종교적인 사색이나 시의 종교성을 의식하고 정한 것이 아니다. 단적으로 이는 문학평론가 김현이 마지막 남긴 평론 「보이지 않은 심연과 안 보이는 역사 전망」의 한 구절 “시는 외침이 아니라 외침이 터져 나오는 자리”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오랫동안 나는 그가 왜 시를 그렇게 정의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쉬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져왔다. 그러다가 최하림 시인의 10주기를 계기로 쓴 추도문 ‘시는 기도(企圖/祈禱)다’가 나로선 그에 대한 일종의 응답이었으며, 종내 이를 이번 산문집의 제목으로 삼았음을 여기 밝혀둔다.

희망 사진관

새삼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면서 오랫동안 활자에 갇혀 있던 희망과 절망, 슬픔과 기쁨, 추억과 사건들이 생생한 현재형으로 되살아나는 기이한 경험이여. 아아! 나의 모든 시는 졸필 같은 몸의 시간이 빚어낸 것들이었구나. 그래서 시도, 삶도 함부로 살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2015년 봄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