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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함정임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4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김제

직업:소설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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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큰글자도서]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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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두

첫 소설집에 작가의 말 대신 어머니께 바치는 헌사를 쓴 것은, 어머니를 향한 애틋함도 애틋함이려니와 매번 소설을 위해 어머니에게 악역을 맡겼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느덧 일곱 번째 소설집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날의 헌사는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써야 할 것 같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어느 날에는 노래가, 어느 날에는 들꽃이, 또 어느 날에는 연인이 나를 불렀다. 3년이면 얼마나 긴 세월일까. 차라리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돌아보니 찰나, 순간이 맞겠다. 이 책은 지난 3년간 바람처럼 세상을 떠돌며 기록한 내 사유의 집이다. 어느 날에는 소설을 쓰다가 공항으로 달려가 아일랜드로 떠났고, 또 어느 날에는 저녁밥을 짓다가 서재로 달려가 편지를 썼다. 이곳에서는 저곳으로, 저곳에서는 이곳으로. 그러고 보니, 이 책은, 하나의 거대한 편지가 아닌가. 편지만한 속 깊은 인사가 있으랴.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어린 아들에게, 멀리 있는 연인에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간절한 마음을 건넸다. 그 한순간, 미칠 것 같은 그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네 마음의 푸른 눈

삶이 혹은 죽음이 소설을 지나간다. 그러나 때로 소설이 삶을 앞서 이끌기도 한다. 소설을 쓰러 갔다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곤 했다. 양수리 수종사, 홍대 앞 클럽, 망원동 유수지, 부다페스트 언덕, 서산 해미 읍성(邑城), 프랑스의 중세 고성(古成), 프랑스와 한국의 고속철, 내장산 구암사, 앤드류 버킨의 영화 'Salt on Our Skin',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주유소', 서용의 둔황 벽화, 송정 앞바다, 기장 어시장, 그리고 부산의 청사포... 소설 곳곳에 미지의 인연들이 살아 숨쉰다. 시공을 초월해, 종족과 장르를 넘나들며 그들은 나에게 화살을 던져주었다. 보잘것없으나마 이 소설집이 놓일 자리가 있다면 모두 그들 몫이다.

당신의 물고기

나는 지난 몇 년간 참으로 많은 곳을 떠돌아다녔다. 그 시기, 지금도 한 쪽 발목이 빠져 있는 듯한데, 나는 얼마나 불행했던가? 아니라고도, 그렇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이방의 하늘 아래서 짐을 풀고 또 싸면서 다시는 떠나지 않기를, 한 군데 오래 머물러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곤 했다. 그 신산스런 삶의 균열들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버스, 지나가다

꽃 속에 늙음을 두고 본다. 늙음 속에 관능을 놓고 본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흘러간다 파란 하늘에 고압선이 흐른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들 세계에 출몰하면서, 소통하려는 의지를 북돋지 않으면서, 소통되는 것들에 가만 기울어지면서, 한 시절 살았다. 이 책은 그런 내 마음의 산물이다. (침묵과 소리, 봉수와 미스 유, 버스와 우편 취급소, 홍콩과 오사카, 한이와 철이, 꽃과 계단... 이 책에 묶인 열한 편의 미니멀 소설들은 2000년 여름부터 2001년 겨울까지의 내 사랑의 현실을 보여준다. 내게 사랑은 과거이고 현재이고 삶이고 죽음이다. 그리고 역사적 미래이다. 사랑이 현실일 때 나는 그것을 타는 불 속에 던지고 싶었고, 사랑이 과거일 때 나는 그것을 흐르는 물 속에 풀어버리고 싶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니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돌아보도록 이끌어 준 그에게 이 책을 바친다.)

사랑을 사랑하는 것

멋모르고 여기까지 왔는데, 삶과 소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롯이 한 세상이다. 나는 다만, 빌려 썼을 뿐. 2020년 2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인생의 사용

보름 후면 나는 다시 파리에 있을 것이다. 파리를 쓰는 3년 동안 나는 파리에 가지 못했다. 파리로 가기는커녕 파리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길을 찾았다. 파리여, 안녕! 나는 반가움의 인사가 아니라 작별의 인사를 파리에게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파리는 내가 그 이름의 책을 내놓기 전에는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파리를 이기지 못했다. 파리여, 안녕? 최근 백일 동안 나는 밤낮없이 파리에게 인사하고 파리를 썼다. 친구도 만나지 않았고, 비틀즈도 듣지 않았으며,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오직 파리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파리 이외의 내 인생을, 그 사용법을 잊었다. 아니 나는 파리를 씀으로써 내 인생의 한때를 사용했다. 이제야 나는 '파리'를 떠난다. 그러니 나는 다시 파리로 갈 수 있게 되었다. 파리를 비로소 조금 알 것도 같다. 알퐁스 카르의 말을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보름 후에 내가 발 디딜 파리는 더 이상 예전의 파리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전혀 다른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처음처럼 다시 인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 여기가 파리로구나!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지금 잃어버려도 좋을 것들, 차마 잊어버려도 좋을 것들, 그러나 어딘가에 살아 있을, 살아 있었으면 하는 것들을 썼다. 동시에 기어이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 그래도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썼다. 지나와보니 그것은 민들레, 민들레였다. 어디로 간 것일까. 바람에 날리던 민들레 홀씨 하나. 어디로 가야 할까. 시인이 내게 알려주었다. 나는 미소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민들레가 그것을 간직하고 있으니.

춘하추동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기적이다. R이 언제 어떻게 나에게 왔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 R과의 만남이 운명적이라면 그 순간은 또렷이 잡혀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면 그녀와의 만남이 운명적이지 않은 것인가? 그런 것도 아니다. 계절마다 이 소설은 나를 함정에 빠뜨렸다. R을 만난 것이 치명적 악연으로까지 여겨졌다. 도무지 잡고 일어설 지푸라기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빛이 없었다. 춥고, 매번 아팠다. 그때마다 나는 길을 떠났다.

하찮음에 관하여

한 번 보고 또 보고, 한번 가보고 또 가보고,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의 대상과 장소는 거의 나와 그렇게 살아왔다. 미란 사람이나 사물이나 이해관계 없이도 내적인 쾌락을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워하게 만든다. 살다보면 하찮은 것들조차 더없이 아름답고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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