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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김미현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5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문학평론가 대학교수

최근작
2020년 6월 <그림자의 빛>

그림자의 빛

“자학적으로 말해 본다면 평론은 작가나 작품, 이론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자긍심을 가지고 말해 본다면 평론이 작가나 작품에 빛을 더해 줄 수도 있다. ‘그림자의 빛’이라는 이 평론집의 제목은 그런 평론의 자학과 자긍 사이에서, 그리고 그림자와 빛 사이에서 제 위치를 찾으려 했던 과정의 산물이다. (중략)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빛도 제대로 보아야 한다. 강렬한 빛은 오히려 눈을 망친다. 그래서 빛도 그림자를 필요로 한다. 그림자가 없는 빛의 문학이 공허한 이유이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는 볼 수 없지만, 가장 짧은 그림자는 빛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림자를 상실한 문학은, 그래서 그림자가 짧은 문학보다 비문학적이다. 때문에 이 평론집에서 추구하는 ‘그림자의 문학’은 정오에도 그림자를 보려는 문학이다.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문학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평론집에서 다루는 모든 텍스트들은 ‘정오의 바깥’으로서의 그림자를 소환해 주는 텍스트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 평론집의 제목이 ‘그림자의 빛’인 이유를 대변해 주는 텍스트들이기도 하다. ‘빛의 그림자’는 너무 절망적이다. 하지만 ‘그림자의 빛’은 모순 안에 내재하는 열린 가능성이고, 절망 속에서도 힘들게 작동하는 희망이다. ‘부정 속의 긍정’이 아니라 ‘부정 자체의 긍정’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 책머리에서

여성문학을 넘어서

진정한 여성 문학은 여성만이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성도 아프다고, 그런데 좀 다르게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여성 문학이다. 무엇보다도 이 지구상에서 여성과 가장 닮은 존재가 바로 남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여성 문학이다. 애정이나 희망 없이 욕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모함이다. 그러니 지금보다 더 나은 (여성) 문학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건강한 분노나 정당한 미움일 것이다. 혹은 더 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여성을 둘러싼 사회 자체도 더 이상 여성을 '결함 있는 남성'으로 보지 않아야 이러한 여성 문학의 움직임들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소설

모두 사랑을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기록된 사랑, 말해진 사랑은 이미 사랑 그것은 아니다(이어령, '현대인의 사랑')." 정말 연애가 무엇인 줄 아는 사람은 결코 연애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며, 기존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의 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불가능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무지개도 5분 이상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는 서양의 속담처럼 "사랑의 달콤함은 잠깐이며 오히려 그에 따른 고통, 인내, 희생이 더 많은 값어치를 지니고 있는 것(최인호,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불완전하거나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 환호성보다는 통곡 속에서 피어나는 무화과(無花果)가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랑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젠더 프리즘

이 책 속의 글들을 포함하여 젠더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잘못' 말하는 것이다. 모든 젠더에는 커튼이 처져 있기 때문이다. 커튼은 치장을 마친 상태, 가면을 쓴 상태, 선해석이 가해진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마치 서정주의 '신부'처럼 얼굴이 반쯤 가려진 상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진실이나 본질에 도달하려면 그 커튼을 찢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젠더의 커튼', '젠더라는 커튼'을 완전히 찢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젠더는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가면이 얼굴이다. 그러니 젠더는 언제나 새로운 질문과 번역을 필요로 한다. '젠더는 대답한다. 고로 실패한다' ('책머리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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