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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김미현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5년, 대한민국 서울

직업:문학평론가 대학교수

최근작
2020년 6월 <그림자의 빛>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이 분야에 6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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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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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식상한 표현이지만 박완서는 그 자체로 한국문학에 내린 ‘축복’의 상징이다. 2011년 1월 22일 사망 후 1주기를 맞아 출간된 마지막 소설집 『기나긴 하루』에서는 1970년 40살의 나이로 등단한 이래 40여년 동안 언제나 현역작가였던 박완서의 흠 잡을 데 없이 자연스러운 ‘천의무봉(天衣無縫)’적 글쓰기(김윤식)나 무엇이든 자유자재로 빚어내는 ‘장악(掌握)’의 글쓰기(신형철)가 지닌 실체를 재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작품인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는 박완서 문학의 종합편 같은 작품이다. 대표작인 「엄마의 말뚝1」 이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연관되는 박완서 문학의 원형질이나 고갱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박완서 문학의 ‘마지막’과 ‘처음’이 우연인 듯 필연으로 만나는 문학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원한’이나 ‘억울함’이라는 문학의 출발점을 확인시켜 주면서, ‘증언’이나 ‘징벌’을 위한 ‘기억의 글쓰기’라는 형식을 통해, 어떻게 ‘돈’이나 ‘일상’을 환상 없이 바라볼 수 있는가라는 주제가 동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어떤 상처하고 만나도 하나가 될 수 없는 상처를 가진 내 몸이 나는 대책 없이 불쌍하다”(「빨갱이 바이러스」)라는 쨍쨍한 울림이 박완서 문학을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만들 것이다. 『노인과 바다』를 노인만 읽느냐고 반문하던 생전 작가의 말을 빌려, 박완서 문학을 박완서를 좋아하는 독자들만 읽어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문학의 축복은 모든 이들이 나누어 가질수록 더 커진다.
2.
정미경의 소설은 도발적인 희생양들이 쓴 21세기의 고현학(考現學)이다. (……)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항해가 아니라 파우스트적인 제의를 통해 유혹적이고도 위험하게 ‘가짜’와 ‘진짜’를 문제 삼는다.
3.
운명이라고 하는 고통으로 먹이사슬처럼 연결된 인간관계 가운데 김이설은 새로운 인공 가족을 탄생시킴으로써 ‘나쁜 피’를 희석시킨다. 그녀는 ‘성격은 곧 운명’이라는 주제를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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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이라는 근사한 소설가의 이름으로 영원과 겨룰 수 있는 언어를 우리에게 선물로 준 그녀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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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박상우는 이미지라는 알을 품고 있다가 소설이라는 새를 낳는 작가다. 「내 마음의 옥탑방」 또한 옥상방(屋上房)이 아니라 옥탑방(屋塔房)으로 불려질 때의 이미지가 글을 쓰게 한 소설이다. 옥상방은 옥상에 위치한 방이라는 물질적 공간에 머물지만, 옥탑방은 위압감·이방감·폐쇄감·유배감의 느낌을 통해 심리적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이것은 김윤식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상(李箱)이 "조감도(鳥瞰圖)를 오감도(烏瞰圖)로, 동해(童孩)를 동해(童骸)"로 바꿔 놓은 것만큼의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6.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5월 8일 출고
    (중구 서소문로 89-31)
  • 이 책의 전자책 : 4,900원 전자책 보기
신이 있고, 인간이 있다. 그 둘 사이에 우상이 있고, 그 둘 아래에 전갈이 있다. 그렇다면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신이 되지 못한 존재를 말한다. 그리고 전갈이란 인간보다 못한 인간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은 우상에 불과하고, 그런 우상을 만드는 인간들은 모두 전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인간을 괴롭힌다.『전갈자리에서 생긴 일』에서 작가 이응준의 종교적 상상력이나 시적 상상력이 개입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의심이다. 작가 이응준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나쁜 인간들이 처한 불가항력의 부조리나 폭력을 문제삼는다. 그리고 그런 불행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조차 없는 전갈 같은 인간을 그린다. 위선이 아닌 위악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말처럼 문학의 종교성이란 “신과 인간, 그리고 그사이에 있는 세상이라는 고통에 관해 고민함,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7.
이 소설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어둡고 우울하다. 가난, 청춘, 트랜스젠더, 강간, 폭력, 죽음, 자살 등 가능한 모든 불행과 슬픔의 기호들이 난무한다. 때문에 이 소설을 현재의 현실에 대한 기록이나 비판으로만 읽으면 그냥 부정적 결말에서 끝나버리는 ‘한 겹’의 소설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과연 ‘인간다운 삶’이 과연 권리인지 아니면 의무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그리고 불편하게 질문한다. 사건의 중심에서 주변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소설 속 ‘악마’가 죽어도 여전히 지옥은 지옥이고 타인은 이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결말에서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두 겹’의 소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악무한적인 현실 속에서 인간 은 과연 자퇴할 수 있는가. 대답이 곤란한 이런 질문에 의해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된다.
8.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열심히 생각하고 기억한다. 사람들 사이에 심연이 있고, 그 심연을 건너기 위해서는 날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김연수는 김연수이기 때문에 그 심연이 깊고도 넓다고 말한다. 하지만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인용하며 다시 말한다. “희망은 날개 달린 것.”짧고도 빛나는 순간의 날갯짓 때문에 인간은 죽을 수도 있고, 다시 살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을 두 번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소설의 문장들은 참 아름답고 처연하다.
9.
  • 포피 
  • 강희진 (지은이) | 나무옆의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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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 | 세일즈포인트 : 73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5월 8일 출고
    (중구 서소문로 89-31)
  • 이 책의 전자책 : 9,000원 전자책 보기
『포피』는 탈북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접근이나 페미니즘적인 접근에서 보여주었던 상투성과 계몽성을 피해가고 있는 새로운 탈북소설이다. 남한 소비자본주의의 상징인 ‘키스방’과 북한 공산주의의 상징인 ‘탈북 여성’의 결합으로 인해 소설의 긴장과 갈등이 자연스럽게 구조화되면서 죽어도 살아 있는 남북한 ‘좀비들’의 실상이 중층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주인공 ‘나’가 손님인 소설가에게 자신의 전사(前史)를 구술하는 소설 형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필력도 놀랍다. 반성이 아니라 질문이 요구되는 문제작이다.
10.
“고양이는 있지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있으면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양이가 있으니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 이 소설은 ‘가능성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소설의 본질인 허구성과 인생의 의미인 희망을 동시에 문제 삼는다. 비슷한 것은 가짜이지만 진짜보다 절실한 가짜는 진짜라는 믿음과 공감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가짜 속의 진짜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속의 가짜를 찾아가는 21세기 버전의 『모비 딕』을 연상시킨다. 고래라는 운명에 패배하는 비극적 영웅의 패배가 아니라 오리라는 허상을 현실화하는 따스한 공동체의 온기가 감동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다가온다. ‘폭풍을 잡아먹은 훈풍’을 내장한 소설이다.
11.
  • 모나코 - 2014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공간 3부작  
  • 김기창 (지은이) | 민음사 | 2014년 10월
  • 13,000원 → 11,700 (10%할인), 마일리지 650원 (5% 적립)
  • (18) | 세일즈포인트 :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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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서소문로 8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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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늙은’ 소설이 아니라 단지 ‘젊지 않은’ 소설에 해당한다. 삶이 삶으로 다가오도록 하는 정공법을 구사하기에 무거울 수 있고 낡아 보일 수 있는 문제를 눈과 어깨의 힘은 빼면서 유머러스하면서도 페이소스를 담아 형상화하고 있다. 서사가 아닌 인물로도, 사건이 아닌 관계로도, 인칭이 아닌 시점으로도 소설 속에서 갈등을 만들고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는 좋은 예를 보여 주기에 가독성도 있다. 노인 소설의 확장이자 포스트 실존주의 소설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는 이종 장르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12.
  • 살고 싶다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 이동원 (지은이)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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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 | 세일즈포인트 : 294
『살고 싶다』는 군대에서도 뜨겁게 살고 싶었던 군인과, 그의 자살 이유를 추적하는 동기 관심사병이 경험한 삶의 온도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 모두 ‘너는 뜨겁든지 차갑든지 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너를 토해낼 것이다’ 하는 성경의 말을 현실의 실존적 차원에서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뜨겁게 살고 싶었으나 차갑게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너무도 살고 싶었으나 차라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들의 고립된 운명이 정보가 아닌 성찰, 독백이 아닌 사건으로 치밀하게 형상화된 소설이다.
13.
이 소설 속에는 ‘많이’ 그리고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사랑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라는 점에서 연애소설과 갈라진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욕망’과는 달리, 여자와 남자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자아와 타자, 자아와 세계 사이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나무가 되어서라도 이루려 하거나, 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사랑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 그리고 삶 또한 삶다워질 수 있게 된다. 욕망을 초월하려는 욕망만큼 절망적이면서도 희망적인 욕망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신성하다.
14.
  •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습니다.
황정은 소설의 자아는 손쉬운 연대를 통해 가벼운 희망을 구하지 않는다. 황정은의 이런 자기‘변명’ 아닌 ‘옹호’의 깊이와 넓이는 자아의 위기가 ‘예외 상태’가 아니라 ‘상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데에서 온다. 개별자라기보다는 단독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타자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고 그저 타자와 함께 있으려고 하기에 더욱 그렇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타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에 그렇다. 망각이 죄이고, 기억이 윤리이다. ‘미래를 기억해야 한다’는 역설이 여기서 나온다. 미래가 과거의 상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면, 미래는 꿈꾸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 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는 여전할 수 있다. 「양의 미래」는 이런 ‘타자에 대한 타자의 윤리’의 데칼코마니다. 차갑고도 따뜻한 수작秀作이다.
15.
  • 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 이재찬 (지은이)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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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 | 세일즈포인트 :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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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는 비도덕적 사회 속에서의 도덕적 인간에 대한 항변과 변호를 일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최소한 도덕적이다. 도덕적 사회 속에서의 부도덕한 인간에 대한 비판과 단죄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은근히 도덕적이다. ‘이유 없는 반항’에서 ‘이유 있는 반항’으로의 변모 이후에나 가능한 ‘필요 없는 반항’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는 점에서 모험적이고도 전위적이다. 너무 독하고 징해서 부담스럽지만, 소설 속 “갈기갈기 갈라진 영혼”들의 펀치를 피할 도리는 없을 듯하다. 아프다.
16.
조해진 소설의 특장인 추상적이고도 관념적인 아우라가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이야기와 만난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은 동 세대 젊은 작가들의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우화적 혹은 동화적으로 표출된 수작이다. 연인들의 공동체, 무위의 공동체, 윤리의 공동체, 생명의 공동체에 이어 우리는 이 소설로 인해 ‘숲의 공동체’를 가지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는 곳, 날카로운 칼이나 유리 조각이 없는 곳, 버그나 몬스터로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곳, 사라져 버리거나 위장되어야 하는 유령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좋은 곳, 바로 그 진짜 숲 말이다. 이 작품은 유령과 같은, 그래서 부피감과 무게감이 전혀 없는 존재들의 발자국들만 보이는 소설이다. 발자국들이 몸통의 움직임을 대신하는 족적(足跡)의 소설이 탄생한 것이다. 아름답다.
17.
  • 밤의 첼로 - 이응준 연작소설 
  • 이응준 (지은이)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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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 세일즈포인트 : 160
이응준의 『밤의 첼로』에 실려 있는 소설들이 이질적인 어둠의 언어들로 채워진 방주와 같은 소설들이라면, 그들을 이어 주는 다리와 같은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소통을 빙자한 충돌이나 침입이 가능할 뿐이다. 해결 불가능한 갈등을 숨기지 않으면서, 혹은 불통만이 가능한 소통을 노골화시키면서, 이응준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의 증인이 되려고 한다. 세계와 사랑, 신과 인간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분쟁들을 활성화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응준은 세계에 냉담하고, 사랑에 실패하며, 신을 모독하고, 인간을 경멸한다. 그들이 형성하는 관계의 이질성과 차이, 분열과 파열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의 종합이나 화해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만을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바로 이응준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들과 ‘불화’한다.
18.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더 이상 낯설지 않게 실감할 수 있는 말이다. ‘타인이 지옥이다.’ 이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제한된 시공간에서 인간의 이런 어두운 본성이나 내면을 신랄하게 조명하는 작가 정유정의 신작 『28』은 ‘화양’이라는 가상의 수도권 도시에서 28일 동안 ‘붉은 눈’이라고 불리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창궐하자 벌어지게 되는 무간지옥을 다룬다. 눈이 빨갛게 되면서 한나절 정도면 갑자기 40도가 넘는 고열이 나고, 이삼일 안에 폐출혈을 일으키며 죽음에 이르는 병은 그 자체로 불가해한 폭력과 재난의 상징이다. 당연히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악들이 벌어진다. 인간은 모든 원인을 개에게 전가하고, 국가 권력은 화양을 고립시키며, 도시 안에서는 살인과 강간, 방화와 약탈이 끊이지 않는다. 개보다 못한 인간이 있고, 인간보다 인간적인 개도 있다. 그래서 인간도 개도 모두 불행하다. 불행이 불행을 낳으면서 불행은 더욱 증폭된다. 이런 불행의 최고치는 이런 지옥도가 바로 현실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화양은 세상 어딘가에서 지금도 찾아 볼 수 있는 곳이고, ‘붉은 눈’은 작가가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를 생매장하는 동영상에서 모티프를 따온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지옥이 존재한다.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 서재형의 묘비명은, 그래서 다음과 같다. “서재형, 인간 없는 세상으로 가다.” 정유정 작가는 전작인 『내 심장을 쐬라』나 『7년의 밤』에서 보여준 것처럼 탄탄한 플롯과 육박하는 문체로 한 치의 낭만이나 연민을 허락하지 않은 인간의 야수성을 적나라하게 묘파한다. 그래서 얻게 되는 것은 “살아 있어 무섭고, 살고 싶어서 무섭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전언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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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든 것이 침으로부터 시작되고 끝이 난다. 침의 정상 분비량은 1분당 0.6㎖, 시간당 36㎖, 하루 1ℓ에서 1.5ℓ 정도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지만, 막상 결핍되면 심각한 장애와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 바로 침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나지 않는 존재감”과 “하찮게 취급되는 비중이나 가치”라는 면에서 침과 비슷한 시어머니가 있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하던 며느리는 직장에서 해고되자 “입주 보모”처럼 살림과 육아를 전적으로 도맡아주던 시어머니를 내쫓으려 한다. 마치 침처럼 뱉어버리려는 것이다. 사실 시어머니의 침이 마르기 시작한 것은 손자의 이마에 난 상처에 침을 발라주었을 때 며느리로부터 받은 멸시와 모욕 때문일 수도 있다. 며느리는 사막처럼 건조해진 일상과 가족 관계를 초래한 시어머니와 자신은 교배가 불가능하도록 생식적으로 “분리된 종”이라고 생각한다. 종이 진화하면서 분화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자식과 부모사이에서도 이득을 따져야 당연할 만큼 세상이 바뀌었어도, 자신과 며느리의 관계는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었기에 하나처럼 보이는 “이중 생물”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이나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이 두 ‘여인들’은 공히 인류 최초의 어머니인 ‘루시’처럼 멸종 직전의 “화석 인류”에 가깝다는 진실이다. 작가는 자본의 논리 속에서 쓸모없는 잉여적 존재로 취급받기 쉬운 여성들의 모성과 노동을 양가적인 침의 상징성으로 녹여냄으로써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이 소설 자체가 이윤과 효율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진화에 대한 맹목과 공생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처절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에 대한 리얼하고도 불편한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20.
  • 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 박범신 (지은이)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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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 | 세일즈포인트 : 3,992
가족이란 무엇일까. 일본의 감독이자 영화배우인 기타노 다케시는 누군가 보고 있지 않으면 몰래 내다 버리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누군가 보고 있기에 차마 버리지는 못하는 ‘뜨거운 감자’가 바로 가족이라는 의미도 된다. 우리 인생에서 최후의 보루인 가족조차도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여전히 남아있는지 의심해 봐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박범신 작가가 등단 40주년에 펴낸 40번째 장편소설인 『소금』은 가족 때문에 가출하거나 가족을 위해 일하다가 죽은 아버지들을 위해 쓴 21세기판 ‘사부곡’이자 ‘제망부가’이다. 사모곡이나 제망매가처럼 어머니나 누이동생으로 대변되는 여성을 위해 쓴 소설이 아니라, 아버지나 남동생(아들)으로 대변되는 남성들을 위해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본주의의 “빨대” 혹은 “깔때기” 노릇을 하며 가족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하지만, 단지 “통장”이나 “숙맥”, “그림자” 취급을 당하는 아버지들에 주목한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치사한 굴욕’과 ‘쓴맛의 어둠’을 줄기차게 견뎌온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들에게도 아버지들이 필요했음을, 아버지들도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불렸던 ‘청춘’이자 ‘남자’였음을 뼈아프게 증언한다. 역할이나 책임만을 부여한 채 아무런 권리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효도가 비즈니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본주의의 종합폭력세트와 같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아버지’들을 등장시켜 작가는 완전한 가족 혹은 정상 가족에 대한 환상이나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고 있다.
21.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작가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읽게 되는, 그런 작가가 있다. 폴 오스터가 그렇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겐 두 종류의 문학이 있다. 내 작품이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작품들. 그리고 내가 쓴 작품들.’ 나는 전자에 커트 보니것, 돈 드릴로, 필립 로스, 그리고 폴 오스터를 넣는다”라는 움베르코 에코의 추천사가 이런 폴 오스터의 작가적 위상을 확인시켜준다. 신간 『선셋 파크』에서 폴 오스터는 자신의 특장인 도시인의 황폐함과 냉정함 속에 내재하는 상처와 감성을 드라이하면서도 웅숭깊게 펼쳐 보인다. 상류층 가문의 자제이지만 의붓형의 교통사고에 책임이 있다는 자책으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채 야망 없이 살아가는 28살의 청년 마일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꿈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이다. 가진 것 없지만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입하면서 열심히 살아보려는 마일스의 친구 빙, 낙태 경험에 대한 공포로 육체적 욕망을 억눌러야 했던 엘렌, 똑똑하지만 뚱뚱한 몸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는 앨리스. 이들이 무단점거해서 같이 살고 있는 브루클린의 선셋 파크 지역의 ‘버려진 집’은 그 자체로 소속 없고 불안한 현재 미국 젊은이들의 그늘과 분노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바보인 줄 아는 바보들이라는 점에서 희망은 있다. 그리고 그런 희망의 모습은 연인이나 가족들과의 용서와 화해로 그려진다. 가령 마일스는 17살 미성년자 필라와 위험한 교제를 통해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폴 오스터이지 않은가. 그래서 완전한 희망을 확실히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길 위에 서 있는 이야기이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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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6?25전쟁이 문학적 제재로 사용될 수 있을까. 그것도 전쟁 미체험 세대에 의해서 소설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더구나 한국 국적이 아닌 작가에 의해서 써질 수 있을까. 이런 우문(愚問)에 대해 이창래의 『생존자』는 현답(賢答)을 내놓는다. 6?25전쟁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질병이자 불행의 보통명사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전쟁 아닌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영원한 피난민이며, 3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대 작가의 작품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 중요 등장인물들로 등장하는 준과 헥터, 실비는 서로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때문에 만나게 된다. 그것도 서로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로서 말이다. 준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총살당하고, 전쟁 포로로 끌려간 오빠는 미군병사였던 헥터의 손에 의해 전사자 처리된다. 어머니와 언니는 폭격으로 죽었고, 쌍둥이 동생들마저 같이 피난 기차를 타고 가다가 떨어져 죽는다. 전후 고아원에서 만나게 된 준과 헥터는 고아원을 경영하는 목사부인 실비를 어머니이자 연인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연적 아닌 연적 관계가 된다. 실비 역시 1934년에 일본군의 고문과 폭력으로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부모를 처참하게 잃어버린 후 자포자기적인 삶을 산다. 소설은 이 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1934년-1950년-1986년’의 시간과 ‘만주-서울-미국-이탈리아’의 공간들을 교차서술하면서 퍼즐 식으로 탄탄하게 구성한다. 그러면서 한 치의 동정이나 신파를 허용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무엇을 배우거나 반성하라는 것이 그것을 실제로 체험한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잔인한 요구이자 허황된 관념인지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한 “살아남은 것이다.” 소설 제목이 내포하고 있듯이, 굴복해서라도 생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간주되기에 전쟁은 가장 중대한 유죄이자 가장 비인간적인 형벌인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슬프지 않고 아프다.
23.
D. H. 로런스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대부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일 것이다. 평판작이 대표작이 아닌 경우를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로런스는 <아들과 연인>이라는 뛰어난 작품 이외에도 <무지개>, <연애하는 여인들>등의 장편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性)을 다룬 문학은 대표작이 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채털리부인의 사랑>은 대개의 원작 있는 영화화가 왜곡 혹은 변형되기 쉽듯이 ‘에로영화’로 접한 경험이 강해서 원작의 진면목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번에 새로 3편이 추가 번역되면서 재출간된 로런스의 대표단편집 <패니와 애니>를 읽으면 로런스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다. 로런스는 탄광촌의 노동 계급 출신답게 정통적 사실주의에 입각해 계급의식을 문제 삼지만, 날것 그대로의 사회적 계급 갈등이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의식 저층까지 파고든 근원적 한계로서 타자와의 갈등을 더 중시한다. 대표 단편인 ‘국화 냄새’를 보면, 낭만적인 향기가 아니라 절망적인 일상을 대변하면서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연결되는 상징물로 국화 냄새가 기능하고 있다. 탄광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그 시신을 보면서 느끼는 절대 고독감과 허무감은 출생 배경이 다른 부부 간의 갈등으로 읽힐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죽음 앞에서 확인되는 절대적인 고독감, 성적인 매혹과 심리적인 환멸 사이의 갈등이 더 문제적이다. 표제작인 ‘패니와 애니’에서 대립되는 두 여성인물의 이름이 대변하듯이, 로런스는 귀족/평민, 고상함/천박함, 숙명/의지, 몸/정신 등에서의 갈등을 대위법적인 인물로 배치한다. 그리고 그런 갈등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쉽게 치우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한계를 열린 사고로 형상화한다. 겸허하고도 냉혹한 작가의식이다. 그래서 로런스는 ‘낮’과 ‘밤’의 대립이 아니라 ‘정오’와 ‘자정’의 만남을 중시한다. 작가 자체가 낮과 밤의 ‘사이’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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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삶을 사는 인간을 흔히 ‘인간쓰레기’라고 한다. 『정크』의 제목은 이런 인간쓰레기를 상징한다. 사생아로 태어난 비정규직 게이인 까닭에 보잘것없거나 혐오스러운 존재로 취급당하는 주인공의 삶은 그 자체로 정크 푸드나 정크 메일처럼 폐기 처분되어야 할 쓰레기로 취급당하기 때문이다. 유전자 기능을 갖고 있지 않는 정크 DNA처럼 주인공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한다. 이런 정크족을 통해 온갖 화려한 생산품들의 잉여물인 쓰레기를 양산하는 모더니티의 발전 논리를 비판하는 것은 이미 식상하다. 동성애라는 제3의 성을 소수자나 타자의 입장에서 변호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작가는 이런 식상하고 익숙한 ‘한 줌의 도덕’에서 더 나아가 ‘루저 중의 루저’가 겪는 생존과 자존을 문제 삼는다. 루저가 피해자라면, 루저 중의 루저는 자해자다. 다수에 저항하는 소수가 아니라, 소수로 오인되는 다수이기도 하다. 그들은 쓰레기가 있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위험스럽다는 것을 건조하게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쓰레기의 재활용이 아닌 신생을 문제 삼는다.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기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분노보다 성장이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크』는 이처럼 ‘상실의 시대’ 이후를 살아가는 ‘포스트 루저’들의 서바이벌 게임이자 크라잉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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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온전히 향유하는 방법은 시집을 그냥 읽는 것이다. 시집은 소설책처럼 요약될 수도 없고, 실용서처럼 활용할 수도 없다. 그러니 시집에 대한 서평 또한 시들을 직접 많이 소개하는 것이 온당할 수 있다. 더구나 시집의 제목이 <희망이 외롭다>라면, 그리고 “모든 시의 제목은 이런 것이 아닐까?/나는 이렇게 위독하다……는”이라고 말하는 김승희 시인의 감각에서라면 시어 이외의 말들을 최소화 하는 것이 최고의 응급처방이 될 것이다. “수도꼭지를 들고 다닌다고 물이 나오는 게 아니듯 희망을 희망하는 게 너무 외로웠다.”(시인의 말) 왜 이토록 희망이 외로운가. “오늘 여기에서 하루하루는 유격전이다,/유격대는 아니지만 늘 유격의 마음이 있다,/서울은 날이면 날마다 유격전이다.” “서울이여, 서울에서,/희망도 스펙이라고 쓴다, 지우고/희망은 오늘/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외설이 되었다고 쓴다.” “외설에 가까운 희망이여,/너무 고독해서 고독의 품위를 지키지 못했구나.” 그래서 “우울을 버리려다 더 우울만 창창하다.” “문이 불현 듯 벽이 된 까닭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래도’나 ‘아직’, ‘아랑곳없이’라는 희망의 부사어들이 살아있다. “그래도라는 섬에서/그래도 부둥켜안고/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벌써라는 말에 비교해보면/아직이라는 말 너무 좋아,/아직 살아있구나……벅차게 손목을 잡아보는…….” “위독의 문학도 그런 최후의 경지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아랑곳없이……/폐결핵 3기에서도/심장에서 더운 김이 펄펄 나고/구름도 얼어붙은 차디찬 푸른 하늘에 링거 병을 매달고/아랑곳없이……/더할 나위 없이 좋은 최후의 그런 말…….”그러니 외로워도 다시, 희망이다. “간신히, 희망! 정말 희망은 우리에게 마지막 여권. 뿌리칠 수 없는 종신형인가보다.”(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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