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인천구월점] 서가 단면도
|
박찬순의 세번째 소설집.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가리봉 양꼬치'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찬순은 앞서 낸 두 권의 소설집에서 다문화적인 코드와 더불어 혹독한 삶을 견뎌내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 생이 쥐고 있는 희망을 담은 소설들로 주목을 받았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각자 자기 몫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그 안에서 희미하게 존재하는 생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신선한 상상력과 단단하고 품격 있는 문장을 바탕으로 빈틈없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박찬순의 소설은 예술과 삶에 대한 고뇌의 시간이 눅여져 더욱 깊이 있는 성찰로 독자를 인도한다. 소설집에는 총 열한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2040년의 낯선 시공간을 배경으로 최첨단 디지털 기기에 몸을 내맡긴 인간의 운명(「달팽이가 되려 한 사나이」)을 펼쳐내기도 하고, 문학이 죽어가는 시대, 다른 언어권에서 한국문학은 무엇으로 소통되는지(「테헤란 신드롬」) 성찰하기도 한다. 이웃나라에서 느끼는 멀미(「레몬을 놓을 자리」)의 정체나, 장소에 숨겨진 존재의 운명(「성북동 230번지」)에 대해 탐구하기도 하고, 애도에 대해(「재의 축제」,「아홉번째 파도」) 이야기하기도 한다. 오직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신천을 허리에 꿰차는 법―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로 구술 소설의 가능성을 시도한 작품도 눈에 띈다.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 : 비올라 다감바의 화음
어째서 브뤼셀역의 탈리스는 가버린 것일까. 모든 게 악기 박물관에서 만난 그 비올라 다 감바 때문일 것이다. 다리 사이에 끼고 켜는 악기의 협주곡을 듣고 있었다. 그러자 그 반응은? "우리의 두 손은 각각 그 선율과 리듬에 맞춰 서로의 몸을 켜나갔다. 현으로 된 악기를 켜듯이. 낮은 선율이 어디에 닿아도 튕겨 나오지 않고 스르륵 우리 가슴속으로 스며들 듯, 우리들의 손길도 마찬가지였다. 어렴풋이 그의 손길이 선율의 그것만큼이나 한없이 은근하고 살보드랍다는 생각이 들 무렵, 다리 사이에 끼어 있던 무언가가 내 몸을 휘감았고 동시에 단단하게 잠겨 있던 몸이 스르르 열리는 듯했다. 이윽고 몸속에 찰랑찰랑하던 샘물이 왈칵 솟구치면서 나는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행복감과 희열을 맛보았다." 악기와 성의 감각. 감미로움. 텔레만 음악의 진수. 잠깐! 이제 어찌해야 할까. 무궁화호를 탈 수밖에. 거기에도 기묘한 만남들이 있을 테니까. 비평적 포인트. 참신하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조선일보 2018년 3월 30일자 '한줄읽기' - 한겨레 신문 2018년 4월 5일자 '책과 생각'
|